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티베트의 역사

◎ 행복한 삶/2. 여행-해외

by 최안동(圓成) 2018. 11. 6. 22:30

본문


티베트의 역사[백과자료]

 

투뵈(티베트어)

기원전 2세기에 중앙아시아에 있는 티베트 고원의 지역으로, 토착 티베트인들의 고향이다. 평균 고도는 약 4,900m이며, 지구상의 육지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린다. 티베트에서 가장 높은 곳은 해발 8,848미터의 에베레스트 산이다.

행정 구역 상 티베트의 서부와 중부는 티베트 자치구(시짱 자치구), 동부는 쓰촨 성과 칭하이 성 등의 민족자치주로 나뉜다..




               ○ 투뵈 왕조

티베트의 기록된 역사는 7세기초에 남리루쩬(囊日論贊)왕이 중국에 사신을 보냈음이 확인되지만, 실지 티베트 최초의 통일 국가는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왕국으로서 다스린 송첸캄포(松贊干布, 581 ~ 649)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663년 수도를 라싸로 정하고 티베트 왕조를 열었다. 원래 투뵈왕조의 뿌리는 얄롱계곡에 있었는데 넓어진 나라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고자 라싸로 도읍하게 된다.

지금의 라싸는 당시에 호수가 많은 곳이 였는데 그 호수들을 메워서 수도를 건설했다고 한다.

쏭짼대왕은 부락이나 씨족단위로 흩어져 살던 민족을 통일하고 영토를 넓혀나가 당시 세계 최대의 국력을 자랑하던 당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외교적인 수완을 발휘해 네팔과 당의 공주와 정략결혼을 하는 등 나라를 안전 시킨다. 그 다음 문치에 힘을 쏟아 티베트문자를 만들고 법령을 제정하고 불교를 장려하여 사원을 세워 전란으로 거칠어진 민심을 안정시키는 등의 치적을 쌓아 왕조를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천년 왕조의 초석은 나라 글의 창제에서 시작했다.

820년경의 세계. 티베트는 중국(노랑색) 남쪽의 짙은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821년 또는 822년에는 티베트와 중국은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두 나라의 국경에 대한 설명과 함께 양국 언어로 기록된 이 조약은 라싸의 조캉사원 앞의 돌기둥에 새겨져 있다. 티베트는 9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왕국을 유지했다. 이 시기의 티베트는 토번(吐蕃)이라 불렸고, 티베트 문자를 사용하였으며, 3세기 동안 9대의 왕이 다스렸다.

 

5대 달라이 라마 응아왕 롭쌉 갸초

쏭짼대왕 이래 이백년 동안 한때 당나라 수도인 장안까지 점령하며 위세를 떨쳤던 대 투뵈 제국은 842년 제 42대 짼뽀를 끝으로 내부분열로 와해된 후 사분오열되며 긴 분열시기가 도래한다. 사백년이란 세월을 바깥으로는 눈을 한번 돌릴 여유도 없이 군소 왕국으로 갈라져 싸우고 또 싸웠다. 그러다가 1239년에는 몽골군의 침입으로 한때 조공국으로 전락해야 하는 굴욕적인 상황까지도 맞게 되었다.

그렇게 수백 년의 분열시대가 흐른 뒤 뽀따라는 제 2의 창건주를 만나게 되어 비로소 오늘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바로 제5대 달라이 라마 응아왕 롭쌍 갸초(1617~1682)에 의해서다. 그는 투뵈왕조의 고향인 얄룽계곡 출신으로 승려로써 뿐만 아니라 대단한 지락가로 티베트고원을 다시 통일하는 위업을 이룩한 인물이다.


    


 

티베트불교의 총본산 조캉 사원

티베트인들에게 조캉 사원은 제1의 성지다. 신심 깊은 뵈뢰민족이 이생에서의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성지 중위 성지인 카일라스 산을 한번 순례하는 것이란다. 그러나 그 곳은 너무도 멀고 험난한 고행길이기에 대신 조캉 사원을 대신 한단다. 그들의 목적은 우선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팔각가의 환상로를 꼬라 하는 것으로 혹 이승에서 지었을지도 모를 업을 정화한 다음에 깨끗해진 몸과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가 영험하다는 설화가 가득한 조워 석가불상 앞에 오체투지로 엎드리는데 있다고 한다. 조캉이란 뵈릭민의 조워라캉 조워티베트어로 불상이고 신이며 집으로 조워 불상의 법당이란 뜻이고 이를 다시 줄여서 조캉으로 티베트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는 사원으로 라싸에 온 티베트인이라면 포탈라 궁보다 조캉 사원을 먼저 방문한단다.



    


 

조캉 사원은 라모체 사원과 더불어 라싸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있다. 632년에 네팔의 브리쿠티공주가 손첸감포와 정략 결혼했다. “문성공주가 당나라에서 시집오기 8년 전이었다. 송첸감포는 브리쿠티 공주를 위해서 639년부터 647년까지 총 9년에 걸쳐 조캉 사원을 지었다. 이때 송첸감포는 반지를 던져서 반지가 떨어지는 곳에 사원을 지어 주겠다고 했는데, 반지는 공교롭게도 호수 안으로 떨어졌다. 호수를 막아 사원을 짓기 시작했으나, 사원은 짓기가 무섭게 무너져 내렸다.

공교롭게도 라싸는 거대한 마녀가 엎드려 있는 형국이었는데, 마녀의 심장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지금의 조캉 사원이 세워진 자리인 와탕 호수였다고 한다. 사원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 마녀의 요기를 차단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수천 마리의 양떼를 동원해서 산에서 흙을 날라다가 호수를 메웠다.

완성된 조캉 사원에는 브리쿠티 공주가 네팔에서 가져온 석가모니 8세상을 모셨는데, 훗날 라모체 사원에 있는 석가모니 12세상과 불상을 맞바꿔 놓았다. 조캉 사원의 명칭은 티베트어로 조워[석가모니 불상]의 집이란 뜻으로, 이곳에 모셔진 불상에서 유래하였다. 문성공주가 모셔와 티베트 최고의 불상으로 추앙받는 조워[석가모니 불상]가 있는 곳이다.



 

사원 2층에서 낭코르(Nangkor)를 따라 도는 것은 필수 코스로, 한 바퀴를 돌면 전생의 죄를 씻을 수 있다고 한다. 금정에 올라서 바코르(Bakor) 광장을 바라보자. 조캉 사원을 향해 오체투지하는 티베트인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불심 가득한 티베트의 분위기를 느끼기에 최고의 장소다.


    


    


    

만다라의 도시(라싸 풍경)



    


    


[2018. 10. 16.   티베트의 여정  Posting  -圓成 -]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