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기리야[Sigiriya]
[스리랑카 여행경로]
콜롬보→아누라다프라→시기리야→담불라→캔디→누와라엘리야→갈레→콜롬보→대한민국
■ 시기리야 역사 - [백과자료 옮김]
이곳은 6세기경 절벽 위에 세워진 사자산이라는 고대 성채의 유적들로 이루어져 있다. 성채가 세워진 암석절벽은 경사가 급하며 상단부가 양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정상부의 해발고도는 349m이며, 주변 평야를 기준으로 한 높이는 180m에 이른다. 477년에 카시야파 1세는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정상부의 평지에 궁전을 세웠다. 정상에 오르려면 거대한 사자(sinha)의 벌어진 입처럼 생긴 입구와 목구멍처럼 생긴 좁은 통로(giriya)를 거쳐야만 한다. 시기리야라는 이름은 사자산 꼭대기로 연결되는 통로 모양에서 유래되었다.
○ 시기리야(Sigiriya) 바위요새
죽기 전에 꼭 봐야할 자연절경 중 하나,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 스리랑카 싱할라족의 성지, 스리랑카의 마추피추라 불리는 곳, 바로 '시기리야 록(Sigiriya Rock)' 이다.
1982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세계의 유산'으로 지정 된 "사자 바위".
5세기 말 부왕 다투세나의 장남이었던 카샤파는 부왕이 퇴임을 하면 자동으로 왕위승계가 가능했지만, 평민 계급의 어머니를 둔 약점이 있었다. 그에 반해 혈통이 좋은 이복동생 목갈라나는 그에게 점점 위협적인 존재였기에 불안감을 못 이긴 카샤파는 결국 반란을 일으켜 부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형제까지 죽이려 했지만 실패하자 앞으로 있을지 모를 반역에 대비해 바위 꼭대기에 왕궁을 짓고 살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철저히 고립된 요새에 숨어 살았지만 평생을 불안감에 떨다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불효자식 카샤파 왕의 이야기입니다.
◻ 입장료 30달러 -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투어버스로 바위 왕궁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인데도 관광객들이 참 많이 와 있다. 거대한 바위요새가 그 웅장한 위용을 드러내고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입장료 30달러, 스리랑카 물가에 비하면 많이 비싼 편이지만 그래도 스리랑카의 마추피추라 하지 않은가. 비가 올 것 같다. 바위요새 정상까지는 1,200개의 계단을 내 다리로 걸어서 올라야 한다.
◻ 시기리야 미인도 - 1875년 영국 식민지시절 한 영국인이 이 바위산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다 바위벽에 그려진 이 벽화를 처음 발견함으로써 기억 속에 사라졌던 시기리야 록이 1,40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란다.
바위산 절벽의 철제 계단을 빙빙 돌아 오르고 나면, 석굴 안에 그 유명한 시기리야의 미인도가 있다. 처음엔 미인도 속 인물이 500여 명에 달했다고 하나 지난 세월 속에 훼손되어 현재엔 18명의 미녀들만 벽화 속에 남아 있습니다.
시기리야 벽화는 왕의 시녀들의 시중을 받고 있는 압 살라 라는 요정들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서인도 아잔타 석굴의 벽화 양식과 기법이 연관성이 있어 연구가 진행 중이란다.
이 그림은 뛰어난 표현력과 정교한 그림으로 지금도 그 예술적 가치로 스리랑카에서는 소중히 다루는 보물 중 한 곳이란다.
벽화 아래쪽에는 미러 월(mirror wall)이라 불리는 회랑 벽도 있다.
◻ 사자의 발 - 산 북쪽 중턱에는 성문의 유적이 남아 있다.
여기서 눈을 끄는 것은 사자의 발(lion's foot)이다.
사자 발 사이에 위치한 계단을 통해 다시 카샤파 궁전으로 오를 수 있다.
현재는 사자머리는 훼손이 되어 사라져 버렸고 날카로운 사자의 발만 보인다.
그러면 왜 이곳에 사자를 새겨 놓았을까?
그 이유는 석가모니는 석씨 집안의 사자와 같은 사람이다.
석가모니의 말은 사자의 울부짖음에 비유할 수 있기에 여기에 사자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펌킨자료)
◻ 카샤파 왕궁 - 카샤파 왕궁으로 통하는 문은 본래 코끼리, 뱀, 사자의 문 이렇게 세 군데가 존재했다 합니다.
현재는 사자의 입구를 통해서 카샤파 궁전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절벽을 따라 이어진 철제 계단은 정말 아찔하다.
보슬비도 내리고 힘에 겨워 숨도 차지만 그래도 가야 하는 길, 거침없이 정상을 향해 달린다.
드디어 사자산 정상이다.
사방이 다 탁 트인 이곳이 궁전 이였단다. 멀리서도 적의 침입을 알 수 있는 곳이기에 요새로서는 금상첨화다.
당시 왕궁 이였던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다. 인공 호수부터 계단에 이르기까지 질서 정연하게 설계된 흔적들로 탄성이 솟아진다.
어떻게 이런 시설을 이 높은 곳에 지었을까요?
당시의 건축기법이나 설계자의 안목이 얼마나 고수 였는가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온다.
왕궁 터에서 내려다보는 시기리야의 풍경은 더 없이 평온 한데, 카샤파 왕은 무엇이 불안하여 이 높은 곳에 집을 지었단 말인가?
이런 곳에 집을 짓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까도 생각하면 가슴이 멍해집니다.
이제 내리던 가랑비도 멈추고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주니 내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
배낭에 있는 생수 한 목음으로 갈증도 해소하고, 숨 호흡을 크게 한 번 쉬고, 피로도 말끔히 풀렸다.
이제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갑니다.
◻ 해자 풍경 - 부왕을 시해한 카샤파는 적의 침입을 대비해 요새중심으로 동서 800m, 남북 약500m 지역을 해자를 만들고, 그 곳에 악어를 풀어 놓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옛날의 살벌했던 풍경은 살아지고 그저 평화로운 풍경만이 남아있습니다.
○ 시기리야(Sigiriya) 여정
동양의 진주, 인도양의 눈물로 불리는 섬나라. 천혜의 자연 경관과 도시 곳곳에서 수많은 고대 유적을 만날 수 있는 신비의 나라. 영국 BBC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50곳 중 하나로 선정한 나라 스리랑카, 시기리야(Sigiriya) 여정은 여기서 끝냅니다. 카샤파 왕의 화려했던 왕궁의 터는 이젠 한낱 돌무더기에 불과하고 이름 모를 풀꽃들의 안식처가 되어 여행객을 맞이합니다. 권력은 손에 넣었지만 부모를 죽인 불효자의 죄책감은 무엇으로도 용서될 수 없었기에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평생을 살다 스스로 목숨을 다하는 카샤파 왕의 흔적을 보았노라. 결국 욕심으로 인해 나를 다스리지 못하는 중생이 되기보다 힘겨운 길을 걸으면서 내 등 뒤에 짊어지고 있는 인고의 욕정을 조금씩 내려 놓는 나그네는 행복이 있기에 남은 세월동안 비우고 비워 가벼운 마음으로 길 떠나고자 다짐합니다.
[2016. 1. 22~23.(1박2일) 시기리야(Sigiriya) 여정 -圓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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