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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India] - 마두라이[Madurai]

◎ 행복한 삶/2. 여행-해외

by 최안동(圓成) 2016. 2. 26.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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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두라이[Madurai]

 

[남인도 여행경로 : 뭄바이-고아-함피-벵갈루루-마이소르-벵갈루루-코치-알라뿌자-바르깔라-깐야꾸마리-마두라이-폰티체리-마말라푸람-첸나이]

 

 

마두라이 역사 - [백과자료 옮김]

 

인도의 타밀나두 주 바이가이 강 제방에 위치한 도시이다.

원래의 이름은 난마다쿠달이었다. 마두라이 시의 인구는 100만 명 정도로 이 지역의 행정중심이다.

마두라이는 판드야왕의 수도로 문화유산은 2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도시는 서기 500년경부터 중요한 상업 중심이 되었다.

서쪽으로 케랄라 주와 접한다. 타밀나두 주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며, 가장 오래된 도시일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바이가이 강을 끼고 아나이말라이(코끼리) 구릉, 나가말라이() 구릉, 파수말라이() 구릉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 잡은 아담한 옛 도시였으며 판디아 왕국(4~11세기)의 수도로서 미낙시순다레스와라 사원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마두라이의 고대역사는 판드야 왕조의 왕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판디아 왕조 이후로는 촐라·비자야나가르·이슬람·마라타 왕국에게 지배를 받다가 영국에 넘어갔다. 1940년대에는 영국 지배에 대항하는 시민불복종운동의 중심지로 떠올라 커다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마두라이 행정구는 농업지대이기는 하나 1895년 페리야르 강 관개공사와 1960년 바이가이 강 관개공사가 마무리된 이후에도 쌀을 자급하지 못하고 있다. 주요환금작물인 땅콩·목화·사탕수수·커피·생강·감자·배를 재배한다.

 

 

스리 미낙시 사원(Sri Meenakshi Temple)

타밀라두 주의 문장에도 새겨진 최고의 남인도 사원.

쉬바신의 또 다른 화신인 순다레스와라와 그의 아내인 미낙시를 모신 곳이다. 사원 이름에서 알 수 있지만 순다레스와라는 곁가지고 실제로는 미낙시 여신만을 위한 사원이다.

전설에 의하면 미낙시는 물고기의 눈(눈을 감을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하고 언제나 진리만을 쳐다보는 진실의 눈이라는 의미도 있다)과 세계의 가슴을 안고 태어난 처녀. 수습이 안 되는 추녀의 몰골 이란다.

지나가던 예언자가 말하길 이 처녀는 천상 쉬바신의 배필로 점지된 지라 그녀의 노력에 따라 쉬바신을 만나 결혼을 하면 가슴 하나가 사라져 정상인이 될 거라 했다. 남자라면 누구나 멀리 할 외모의 미낙시는 어느 정도 성장하자 쉬바신이 살고 있다는 히말라야의 카일라시신을 방문해 쉬바를 만나고야 만다. 쉬바를 만나자마자 사라진 가슴. 그녀는 쉬바야말로 천상 배필임을 알고 청혼을 하기에 이르르는데.... 쉬바는 당시에 고행중이라 당장 결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미낙시에게 돌아가 기다리면 적당한 때에 방문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미낙시가 무려 8년여를 기다렸을 때 순다레스와라의 모습으로 나타나 미낙시와 이곳 마두라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사원이 문을 닫는 저녁 930분이 되면 자신의 신전에 모셔져 있던 순다레스와라의 신상이 가마를 타고 미낙시의 신전으로 옮겨지고 아침 6시에 다시 신전으로 돌아간단다. 이렇게 부부의 금술도 좋고 매일 밤 부부가 동참하는 신은 스리 미낙시 사원의 신들밖에 없다고 한다.

 

 

    

 

 

 

 

    

 

웅장한 고뿌람

사원의 역사는 판드야 왕국이 전성기를 누리던 1세기로 거슬러 가지만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사원의 모습이 갖추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인 16세기 나약 왕조 때다.

스리 미낙시 사원으로 들어갈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높다란 장벽이다. 이건 마치 사원이라기보다는 군사 요새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이 장벽을 더욱더 두껍게 하는 데는 이슬람 세력의 침입이 한몫을 했다고 한다.

남인도 사원 도시들의 경우 도시 함락의 의미는 왕궁보다 사원이 적의 손에 넘어가는 것이었다고, 사원의 동서남북은 거대한 관문인 고뿌람이 장식하고 있다. 메인 게이트 동쪽 고뿌람으로 높이가 52m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 고뿌람의 외벽을 장식한 신상들은 다양한 인도의 신들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사원 내부는 복잡해 보이지만 의외로 단순하다. 사원 한가운데에 있는 미낙시와 순다레스와라를 모신 신당은 힌두교 신자가 아니면 출입 불가. 결국 외국인 여행자들이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은 신당을 둘러싼 화랑과 같은 느낌의 참도와 사원 내부의 가트 그리고 현재 사원 예술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천 개의 기둥 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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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루말라이 나약 궁전(Thirumalai Nayak Palace)

오늘날 마두라이를 건설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세 운 나약 왕조의 궁전.

겨우 수십 년만 사용한 채 그의 손자인 쵸까나따 나약이 수도를 티루치로 옮겨버리며 궁전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한다.

겉모습은 그럴 듯 하였으나 비둘기 똥이 사방에 흩어져 있고 잘 관리되지 않은 건축물에는 낙서가 심했다. 중앙에 있는 광장에는 빈 의자만 덩그러니 남아서 옛 왕국의 몰락을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2016. 1. 14~15.(2박1일)  마두라이[Madurai] 여정  -圓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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