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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India] - 뭄바이[Mumbai]

◎ 행복한 삶/2. 여행-해외

by 최안동(圓成) 2016. 2. 18.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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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도 [India]

 

수도 : 뉴델리(New Delhi)

인구 : 1,274,250,000(2015년 통계)

기후 : 대체로 열대몬순 기후

면적 : 3,287,590(한반도의 약 15)

시차 : 한국과 -3.5시간차

주요도시 : 뉴델리(New Delhi), 콜카타(Calcutta), 뭄바이(Mumbai), 마드라스(Madras)

주요민족 : 인도 아리안계(중북부/70%), 드라비다계(남부/25%), 몽고계(동북부/3%)

주요언어 : 힌디어(Hindi), 영어(English)

종교 : 힌두교(80.46%), 무슬림(13.43%), 기독교(2.34%), 시크교(1.87%), 불교(0.77%)

통화 : 루피(INR) [1루피 = 18.00]

 

 

 

[남인도 여행경로]

뭄바이-고아-함피-뱅갈로르-마이소르-뱅갈로르-코치-알라뿌자-바르깔라-깐야꾸마리-마두라이-폰티체리-마말라푸람-첸나이

 

남인도[역사] - (백과자료 옮김)

남인도는 뭄바이[Mumbai]와 비슷한 위도상의 인도대륙 중부의 데칸고원[Deccan Plateau] 이남지역을 말하지만 사실상 북인도의 아리아인[Indo-Aryan]들이 자신들보다 문화수준이 낮다고 치부하는 이질적인 드라비다인[Dravidian]문화를 낮춰 부르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남인도는 다시 데칸중심 지역과 그 이남의 타밀[Tamil]지역으로 나뉜다. 남인도는 마우리야와굽타 왕조시대에도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채 어느 정도 독립된 권한을 유지하고 있어 나름대로 독자적인 드라비다인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기원전 1,200년 경 바다를 통해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팔레스틴 등과 교역을 하였고, 기원전 3세기 경 북인도의 아리아인 문명과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제국과도 독자적으로 해상무역을 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풍요로웠다고 한다.

남인도의 주민은 대부분 드라비다(타밀)인이었지만 마우리야 왕조의 통일제국 이후 점차 아리아인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고, 종교는 힌두교보다 아쇼카왕의 불교 전파로 불교와 자이나교의 영향을 먼저 받았다. 타밀 중심의 남인도가 인도 역사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원전 2세기 로마제국과의 무역이 시작되면서 촐라, 체라, 판드야의 세 왕국이 형성되면서부터였다. 이들 세 왕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인 타밀어를 사용했으며, 코끼리를 이용한 전쟁을 하였다고 한다. 사탕수수, 과일, 후추 등을 경작하면서 비교적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였다.

남인도가 여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인도에서 탄생한 힌두교[Hinduism] 미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힌두교 신자들은 자신의 종교를 힌두교라고 부르지 않고 '영원한 다르마'라는 의미의 사나타나 다르마[Sanatana Dharma]라고 부른다. 힌두교의 발생은 고대인도의 종교사상인 베다[Veda]에서 비롯되며, 베다의 사상은 기원전 1500년 이전에서 시작되었는데, 오늘날 종교로서 글로서 남겨진 문학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힌두교는 여러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다신교적 일신교(택일신교 또는 일신숭배)로서 교주 즉 특정한 종교적 창시자가 없는 것이 그 특징이다.


 

 

뭄바이[Mumbai]

인도 제1의 경제도시인 뭄바이는 월래 포르투칼령이었는데 1661년 포트투칼의 공주 캐서린이 영국의 찰스2세에게 혼수로 들고 가 버리면서 영국령으로 변신하였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영국은 불모지였던 뭄바이를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변신시킨 것. 특히 수에즈운하가 개통되면서 더 이상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우회하지 않아도 되자 뭄바이의 항구적 중요성은 더욱 커져버린 것이다.

지금도 인도 농촌의 누군가는 뭄바이 행 열차에 몸을 싣고 가난으로부터 카스트의 사슬로부터 탈출하는 꿈을 꾼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인도인들은 뭄바이를 사쁘네 까 사하르 즉 꿈의 도시라고 한다.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안(Gateway of India)

 

뭄바이의 상징물로 1924년 완성된 초대형 개선문이다.

인도의 황제를 겸직하던 조지 5세가 1911년 인도를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따지마힐 호텔(Taj Mahal Hotel)

인도의 대표적인 민족자본가인 잠세뜨지 나세르 완지 타타가 지은 호텔.

그는 영국의 친구와 함께 뭄바이에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호텔 아플로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단지 그가 인도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호텔 직원에게 출입을 저지당하자 이에 분개한 타타는 호텔 아플로를 꺾을 만한 인도 제일의 호텔을 건설하기로 결심하고 따지마힐 호텔을 지었다고 한다.


 

 

 

 

엘리펀트섬[Elephant lsland]

힌두교 석굴 사원이 있는 섬으로 케이트웨이 오브 인디언에서 바닷길을 따라 동북쪽으로 12지점에 있다.

보트를 타고 1시간정도 들어감, 요금은 왕복 00루피(기억안남)

 

 

 

         

 

 

 

뭄바이 C.S.T. (Mumbai C.S.T. Railway Station)

유럽의 대 성당과 같은 느낌.  건물의 하이라이트인 중앙 돔 위에 있는 4m 짜리 동상 진보의 여신상이야 말로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며 남기고 싶어 했던 말 그 자체다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가 아닌 진보는 개발, 그리고 과학기술이란다.

인도를 식민지배하는 영국으로서는 인도 최초의 기차역을 웅장하게 건설하여 그들의 통치가 인도의 진보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도비 가트(Dhobi Ghat)

세계에서 가장 큰 빨래터로 매일 약 5천 명의 세탁노동자들이 1,026개의 세탁조에서 매일 5교대로 옷을 빠는 곳. 12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이곳은 영국식민지 시절 군대에서 배출되는 각종 군복을 전문적으로 세탁하기 위한 공간 이였다.


 

    

 

뭄바이 여정

20161200:10 A330은 하늘을 날다.

긴장과 설렘으로 새해아침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가다.

기내에서 눈을 감아보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시간 동안 기도한다.

이번 여행이 여유롭고 나를 돌아보는 아라한여정이기를~~~.

드디어 뭄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인도는 넓었습니다.

볼 것도 많았습니다.

인도는 불교 발상지입니다.

우리나라 문화재중 60%이상이 불교문화재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에는 불교적 가치가 그만큼 깊이 반영돼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길가에서 먹는 즐거움이 추억이 된다.

짜이 한 잔은 어디서든 기분 좋게 해준다.

뭄바이의 거리에는 벌레들도 우글대고 도로(인도)에는 길을 막고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천지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먹여야 살고, 잠은 자야 한다. 무거운 배낭에 장거리 이동으로 지칠 대로 지쳤지만 길거리에서 이들과 함께 먹는 즐거움은 새롭다. 또 언젠가 다시 찾아올지는 알 수 없으나 마지막으로 짜이 한 잔을 마시면서 뭄바이를 떠난다.

뭄바이의 진한 짜이 향이 아직도 마음에 맴돈다.


         

 




[2016. 1. 2 ~ 3.(2박)  뭄바이[Mumbai] 여정. -圓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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