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치매병동에서의 닷새 / 12회 제성애

◎ 자 료/3. 카페 글

by 최안동(圓成) 2010. 2. 8. 09:53

본문

그날 아침은 겨울비 같지 않은 거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초행길이라 힘든 것도 있었지만 익히 들어온 부담감이 내리는 빗줄기와 함께 더욱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한 차를 가득 채운 우리 일행의 행선지는 북면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요양원이었다. 자발적인 봉사의 맘으로 나선 길이 아니었기에 차디찬 콘크리트 건물 앞에 서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내가 이곳에서 실습을 해야할 기간은 닷새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억지 춘향격으로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그 맘이 솔직하였다고 이실직고 하련다.

관계자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일반병동과 치매병동 중에서 간절히도 바라지 않았던 치매병동에 배치 받고 보니 눈앞이 더욱 깜깜해져왔다. 함께 간 일행이 없었더라면 되돌리고 싶은 발길이였다.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두 명의 일행과 함께 2층의 병동에 올라갔는데 출입구 문을 여는 순간!!! 나의 시야에 들어온 건 과히 충격적이었다. 좁지 않은 거실 여기저기에 백발의 어르신들이 휠체어에 의존한 채 알 수 없는 시선의 방향은 요즘 애들 말로 멍~때린다는 그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어디 이 뿐이었을까? 방마다 누워 계신 어르신들의 촛점없는 시선과 거기에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풍겨 나오는 악취들......

나는 또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현대판 고려장이랄까? 옆에 끼고 있던 언니의 팔을 얼마나 꼬집었던지 언니신랑한테 이른다고 우스갯소리까지 한다.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휴우~~

하늘색 가운을 입은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다가오시더니 이것저것 도우미 역할을 당부하신다. 처음 한 일은 화장실 청소. 난 지금까지 그날처럼 많은 화장실 청소를 해본 적이 없다. 락스로 바닥을 밀고 물걸레로 닦아내고 마른 걸레로 마무리하고 끝나고 나니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다. 그 동안 게으른 내 몸이 문제였을까? 게으른 내 몸을 원망해 보았다.

잠시 뒤,방안에서 거동이 힘드신 어르신들을 한 분씩 휠체어에 태우고 식사도우미를 해야 했는데 이가 없으셔서 그런지 밖으로 흘러내리는 음식물이 비위가 상해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보호사선생님들의 의식조차도 불분명하신 어르신들을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입맞춤까지 하신다. 그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나도 따라 할머니의 손을 꽉 잡고 눈을 맞추어 마저 남은 죽을 숟갈로 입안에 넣어 드렸다. 등뒤에서

"선생님! 선생님! 밥좀 주우소 배가 고파죽겠어예."

하시며 한 할머니가 등장하신다. 그 할머니는 요주의 인물이라 항상 젤 늦게 식사를 드린다고 이미 들은 바 있다. 배고프시다며 덜렁 바닥에 드러누워 죽은 시늉을 하신다. 그 모습을 보고 모른체 하고 있으니 떼쓰는 아이마냥 저절로 지친듯 이리저리 살피시며 제자리로 찾아가신다. 하도 다른 분들의 식사를 갈취해 드시기 땜에 내려진 조치란다. 매번 식사때마다 벌어지는 일이라고 .....

늦은 오후가 다가오니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이방저방 다니시며 기저귀 갈기가 시작된 것이다. 어찌 그리도 빠르게 일처리를 하실 수 있을까? 진동하는 악취에도 생글생글 웃으시고 삐져나온 용변이 손에 닿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변으로 손장난치신 어르신, 벽쪽에 붙어앉아 꼼짝도 하지 않는 어르신들까지......체력은 기본필수조건인듯하다.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가고 그곳에서 탈출하는 순간,당장 남은 4일이 걱정되었다.

두눈 질끈 감은 둘째날의 시작, 첫날의 실습에 지칠대로 지쳤지만 할수 없는 일이였다.어르신들의 목욕도우미 역할을 하였는데 우와! 요양사 선생님들의 어르신들을 씻기시는 일은 한판의 씨름판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든 일이였다. 소리를 고래지르시거나 손을 물어 뜯거나 욕설하시거나 등 등......그 모든 것들에도 흔들림없이 진행하는 것을 보고 비록 직업으로 하시는 일이지만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며 희생과 사랑없이는 할수 없는 일임을 알수 있었다. 백의의 천사가 따로 없는 듯했다.

치매노인들의 증상은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배꼽잡고 웃은 적도 있었다. 지나가는 나를 세우더니

"어디서 왔는교?"

"창원서 왔는데예."

"우리 아부지 우리 오매 몰캉 창원서 다 죽었다 아이가! 아이고 아이고~~ 금순이도 곱뿐 이도 단봇짐을 쌌다네."

노래가락 장단 맞추시며 손뼉치시더니 하루종일 그 말과 노래만 되풀이하셨다.

당신의 신발을 찾으시는 분, 손바닥을 뜯으시는 분, 엄마 엄마를 외치며 온종일 거실을 돌고계시는 분, 4개 국어를 구사하시는 할머니의 기찬 노래 솜씨와 욕설 솜씨,등 일일이 나열이 안될 정도다. 둘째 날이 다 끝나가니 이 모든 것들이 서서히 적응이 되는 듯하였다. 적응됨과 동시에 어르신들이 어린애처럼 은근히 아니 많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장난도 하고 농담도 먼저 걸어보기까지 했다. 같이 장구도 쳐보고 북도 쳐보고 마냥 어린애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반복되는 하루들이 지나가고 마지막날이 되었다.

첫날에 두려움에 떨었던 나 자신은 온데간데 없고 아이같은 눈길과 마주 잡는 손길, 쓰다듬었던 하얀 백발이 정겹게 느껴졌다.

무시험제도라 한 두달 강의듣고 실습 닷새, 재가 닷새면 요양보호사 국가자격증 준다기에 시간있을 때 따놓고 보자던 나의 얄팍한 생각이 부끄럽고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일선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께 죄송한 맘까지 부담으로 느껴졌다. 닷새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들이지만 내게 있어 돈으로도 살수 없는 마흔 고개를 넘어서 맛본 아주 값진 경험이였다. 그곳에서 만난 그녀들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이였다. 치매를 안고 하얀 세상에서 살고 계시는 애기가 되어버린 어르신들과 그녀들의 눈과 귀와 발과 손이 되어 그분들과 함께 수발을 들며 사랑으로 품어주고 안아주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닷새의 실습을 마치고 뒤돌아서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 못했다. 생각을 놓치고 꼭다문 입안으로 죽을 넣어드리며 마주했던 눈길이 자꾸 내 뒤통수에 꽂히는 듯 했다. 처음 가졌던 마음에서 오는 미안함이라 생각된다. 함께 한 일행들과 다음에 시간내서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꼭 이곳에 봉사활동 오자고 마음을 나눈 걸보면 이심전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우리의 노후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였다.

서툰 글솜씨라 다 표현해내지 못한 그 무엇이 아직 심장에서 꿈틀거린다.

노인복지시설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많이 부족한 듯하다. 아무나 할수 없는 일이기에 다시 한번 격려의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