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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보내며~ / (0) 현영혜

◎ 자 료/3. 카페 글

by 최안동(圓成) 2010. 1. 7.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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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외롭게 지키고 있던 휑~한 달력이 거둬지고

12명의 친구들이 오순도순 모인 따스한 달력이 새로이 걸렸다.

하얀 눈 속에 가늘게 그려져 있는 잎맥들 사이사이 그 좁은 간격에

한층 애틋함과 아울러 다사로움이 함께 전해지는 것은

아마도 한 해의 시작이 또 다른 희망을 안겨주기 때문일 테다.



며칠 전

기축년을 마무리하는 혹독한 찬바람이 쌩쌩 불면서

푸른 햇살을 단숨에 삼켜버리던 차가운 날 오후에 시아버님께서 보자고 부르셨다.



“올해는 너의 결혼 30 주년이 되는 해이구나.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결혼기념일이 되어도 챙겨 줄 시동생도 네겐 없고.....

* * 이는 하필 떨어져 있으니.... 네가 내색은 않지만 마음이 많이 안 좋제?

하지만 형편이 그런 것을 달리 어찌하겠노?

너무 섭섭하게만 생각하지 말거라.”



“네가 이렇게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우리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을 텐데....

며느리 네가 곁에 있어서 든든하고 참 고맙다.

그러면서 항상 미안한 마음도 많고....

더구나 * * 이 할매가 저렇게 누워있으니 네가 마음고생이 많을 줄 다 안다. 휴우~

그런데 내가 뭐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자~ 이것 가지고 가서 뭐 사고 싶은 것 있으면 하나 사거라.”

하시면서 꽤 무거운 봉투 하나를 쥐어주셨다.



평소에 잔정이 별로 없으시고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고지식한 성품에

오랜 공무원생활이 몸에 밴 분이시라 너무나 뜻밖이었다.



“아버님 요즘은 시동생이 있다 해도 형수 기념일까지 챙겨주는 사람 별로 없답니다.

그리고 저 그런 것 하나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물론 부럽지도 않고요.

그보다 제겐 너무나 소중한 * * 이와

곁에서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는 천군만마가 따로 있는 걸요.” ㅎ ㅎ



방으로 돌아와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그동안 아버님께선  당신 방식대로 외며느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하였고

난 내 방식대로 내 감정이 우선이었으니 그건 쉰을 넘긴 며느리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고  일종의  구속이라고 치부해버리고

때때로 크고 작은 불만이 쌓이기도 하였었다.

그러니 자연히 무거운 시선이 부담스러웠을 테고....

그래서 그동안 때론  물과 기름처럼

피차 공감대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 마음도 때로는 단순한 여백으로 돌아 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부족한 며느리 말에 한껏 귀 기울여주고 힘이 되어주셨던 것이 사실이다.

오래도록 한 집에 같이 사는 탓으로 하여

그때마다 일일이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하였고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그것이 마땅하고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었었는데....

그동안 아버님에 대한 사랑과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세월이었지 않았나 싶으니

요즘 부쩍 등이 굽어보이시는 팔순을 넘은 아버님께

새삼 감사함과 죄스러움이 함께 솟구친다.



아늑하고 따뜻한 실내처럼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은은한 훈기로 나를 감싸주고

그걸 바라보는 가족이 있는 공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그리고 올 한 해도 큰 탈 없이 보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바로 이 시간을 신뢰하고

편견과 편협한 생각으로 약간은 무디어져 있던 가족들에 대한  사랑을 돌아보며

새해엔 보다 더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일이

남은 이 추운 겨울을 가장 따뜻하게 보내는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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