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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을 배웅하며 / 3회 김옥희

◎ 자 료/3. 카페 글

by 최안동(圓成) 2013. 12. 31.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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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기수) 김옥희(3)
제목 어머님을 배웅하며

시어머님을 배웅하며

                                   - 다친 마음이 마음의 문을 닫히게 한다.- 

 

내게 있어서 남편은 그리움이었고 완벽한 사랑이었다.

하기에 어머님은 그 완벽한 사랑의 어머님이었기에

그 분이 부당한 요구를 하셔도

그 분이 완벽해지도록

해드리기 위해 노력했다.

 

혼인할 당시를 생각하면

나는 혼인의 조건이 꽤 좋은 편이었다.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좋은 혼처가 많이 들어왔다.

아버지와 아들 부자가 의사였던 집,

28살에 박사가 되었던 사람,

국내 굴지의 기업체 큰 아들 등....

 

그렇지만 나는 이미 그의 사랑에 빠진 뒤여서

눈이 멀었고 귀먹었고,

모든 생각이......... 오직 그 사람 뿐 이었다.

처음에는 무조건 맞선자리에 나가지 않겠다고 거절하다가

나중에는 나가서 거절하는 재미도 느꼈다.

거절당한 그들의 반응을 즐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안하다.

내게 거절당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그렇지만 오롯이 그 사람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조건으로 보면 최악의 남편감이었다.

홀어머니에 무엇보다 집이 사글세였고,

그의 직장도 변변치가 않았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을 때까지 그렇게 버티며 기다린 세월이 8!

가족의 반대에 아버지의 눈물 속에 혼인하고 아들 둘 낳고

5년 만에 그가 떠났다.

그와 함께했던 5년의 세월은 꿈만 같았다.

그의 온전한 돌봄 속에 평화로웠고 행복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가난한 사랑이었지만 부러울 게 없었다.

순전히 그 한 사람의 품속에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살았다.

그 사람의 품이 내 세상이었다.

 

일찍 홀로 되신 어머님을 위해 기도했다.

 

이제 다시는 우리 시어머님 헬레나가 눈물 흘리지 않게 해달라고.........

나는 이런 기도를 하며 살았기에 남편의 생전에는 고부갈등은 없었다.

 

남편이 떠나고 어머님은 심정이 착잡하셨을 것이다.

내 나이 서른세 살.

너무 젊고 살아갈 날이 많은 홀로 된 며느리와

그 며느리 없이 손자 둘을 키울 만약을 생각해본

어머님은 아득하셨을 것이다.


나는 죄인이었고 어머님의 구속이 시작되었다.

 

내가 못 견뎌 하는 것보다 더 못 견뎌서 힘드셨던 것이다.

남편이 떠나고 남편이 없는 마당에 시어머님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신경에 거슬리고 못마땅하셨을 것이다.

남편의 죽음이 모두 내 잘못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것이 나의 보호막이었고

나를 성장하게 한 것이었다.

친구들과 연락할 처지도 못되었다.

아이는 어리고 어머님은 날카롭고

아이의 요구와 어머님의 날카로움에 하루하루가 지쳐서

오히려 밤이 길었다.

큰 집이 서점을 해서 다행이었다.

밤중에 큰 집에 가서 신간을 5권 쯤 빌려와서 밤새도록 읽었다.

 

나는 밤마다 책의 주인공이 되는 변신을 하고

나의 현실의 벽을 넘나들었다.

 

어머님은 새벽미사에 참석하시고......기도생활만 하시고.......

그래도 어머님은 예민하셨고 거칠었다.

어느 날 나는 둘째를 업고 죽음을 결심했다.

그러나 서울 계시던 신부님이 그 새벽에 나타나셔서 실패.

 

밤마다 변신을 하고 현실을 넘나들어도

아이들의 육아와 어머님의 생계를 책임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편의 세 번째 기일에 제사상에 놓였던 술을 마시고 기절.

아들 들이 울고 불고 야단이었다.

어머님도 놀라고 시숙도 놀라고........!!

어머님은 쌀뜨물을 만들어 먹이고

나는 그것도 뿌리치고.......

토하고 울고 온갖 추태를 부렸다.

그리고 일주일을 못 일어났다.

 

어머님은 그 때부터 당신 품으로 나를 안아 주셨다.

포근하게!!

3년의 형벌을 참고 참다 어머님과 맞짱을 뜨는 심정으로

몸부림친 끝에 마음이 다쳐서

닫힌 어머님의 사랑의 문을 열고

어머님의 포근한 가슴 속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작은 관점 차이는 있었지만

전후를 설명하면 다 이해하시고

나의 진정한 후원자가 되셨다.

 

팔순에 일본 벳부 온천에 모시고 갔던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그 이야기만 하면 환하게 웃으셔서

성당 할머니들이 부러워하셨다니까

 

가신 뒤에 성당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어머님 당신 제단을 만들어 주시는 것과

조문객을 지켜보며

생전의 가난한 생활과 애통해하던 그 모든 것을

존경하게 되었다.

 

촛불 속에 사랑표시를 보며

아직도 어머님을 위한 기도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편안하게 떠나십시오.

아버님과 함께 그를 만나서 복된 천상낙원을 누리십시오.

저도 이 세상의 외로움 떨치고

순종하고 청빈하게 살다가 당신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주님! 외로움과 가난 속에 힘들었던 이 영혼을 받아들여

이 세상에 살았던 노고를 치하하며 천상낙원을 허락하십시오.‘

 

고맙습니다.

2013년 송년사를 조사로 한 것을 양해 바라며

2014 새해엔 동문 여러분의 눈물 없는 복된 날,

축사할 날을 기도합니다.

^^

2013년 끄트머리에서 3회 김옥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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