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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도 회원사 대표자 국내 투어 - 2

◎ 행복한 삶/1. 여행-국내

by 최안동(圓成) 2013. 10. 3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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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광장

 

20세기, 청계천은 일제강점기에서 출발했다. 하천 명칭 정리 작업을 거치면서 이름도 청계천(淸溪川)으로 바뀌었다. 또한 택지 조성, 고가도로 계획과 맞물린 청계천 복개사업 등은 청계천 다리 등 청계천의 많은 부분을 훼손시켰다.

광복 이후에는 복개사업이 전개되면서 청계천은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는 지하로 들어가버렸는데 1955년에서 1977년까지 몇 차례에 걸쳐 이뤄진 사업이었다. 그 위로는 총 길이 5.6km의 청계 고가도로가 들어섰고 청계천은 산업화의 이면에 묻혀버렸다. 비우당교와 무학교 사이에 남아 있는 존치교각이 바로 그 흔적이다.

 

      

 

       

 

2003년 7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청계천은 엄청난 변신을 도모했다. 복개한 청계천로와 삼일로 주면 5.84km 구간을 복원하고 총 22개의 다리를 설치하는 등 시민들의 쉼터로 탈바꿈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사였다.

그 결과, 서울의 부끄러운 일면이었던 청계천은 편안한 시민친화형 도심하천공원으로 완전히 변모했다.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각종 문화행사 등이 열리면서 지금은 광장의 역할도 하고 있다.

 

 

 

▣ 삼청각

 

1972년 서울 성북구 성북2동 330-115, 6천여평의 대지에 콘크리트 건물 7채로 설립된 삼청각은 70년대 남북회담 관계자 만찬, 여야 정치인 회동, 외국바이어 접대 등으로 애용된 고급 요정.

한일회담, 첫 남북조절위회의와 만찬이 여기서 열렸으며 군사정권 시절에는 고관대작들이 이곳을 드나들어 밀실정치, 요정정치라는 말이 나돌았다.

70년대 수출드라이브가 한창일 때는 기업들의 외국 바이어 접대장소로 각광을 받았으나, 그 후 일본관광객을 상대로 한 「기생관광」의 본거지란 비난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방석문화’가 사라지고 ‘룸살롱 문화’로 접어들면서 쇠락기를 맞았다. 97년 한정식집 ‘예향’으로 간판이 바뀌며 영업을 계속해 왔으나 1998년 8월 중소건축업체인 화음건설이 300여억원을 들여 매입했다.

 

      

 

 

1999년 12월3일 공식적으로 문을 닫은 삼청각은 2000년 서울시 문화시설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 1월 서울시로 등기이전됐다.

2001년 10월29일 공연장과 한식당, 찻집, 객실 등의 용도로 쓰이는 6채의 한옥으로 구성된 전통문화공연장으로 재개장하였으며, 운영은 세종문화회관측이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았다.

 

 

▣ 임진각

 

연간 400만 명의 내, 외국인이 방문하는 임진각 관광지는 1972년 실향민들을 위해 만들어진 3층 건물로,1950년 6월 25일 일어나 한국전쟁과 그로 인한 민족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서울시청에서 북서쪽으로는 약 54km, 군사분계선에서는 남쪽으로 7km에 위치하며 6,000평 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규모로 세워져 있다.

옥상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민간인 통제구역인 해마루촌과 DMZ를 조망할 수 있다. 임진강지구 전적비, 미국군 참전비등 각종 전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남북이 분단되기 전 신의주까지 달리던 기차가 멈추어 선 채 전시되고 있다. 전쟁에 파괴되어 교각만 남아 전쟁의 흔적을 보여주는 임진철교와 , 실향민들이 고향에 대한 그림움을 달래는 망배단이 있다.

 

 

       

 

북녘 땅에서 생사를 알 수 없는 가족들을 애타게 그리는 이산가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임진각 관광지 내 3만 평의 광활한 언덕에는 통일과 평화의 상징인 평화누리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 헤이리마을

 

헤이리 예술마을은 1998년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미술가, 음악가, 작가, 건축가 등 380 여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집과 작업실, 전시관, 공연장 등의 문화예술공간을 조성하고 있는 마을이다.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곳에서 창작과 전시, 체험활동이 상설 운영되고 있으며 교육과 세미나 등도 수시로 열린다. 헤이리의 공간은 국내외 최고의 건축가들이 단지계획에 따른 설계를 통해 지어져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볼거리가 되고 있다. 일일체험을 마련한 전시와 갤러리들이 많이 있으므로 헤이리 홈페이지에서 내용을 미리 확인하면 좋다.

 

      

 

      

 

어린이들만을 위한 문화시설이 속속 늘어나면서 어린이 단체관람객과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많아졌다. 헤이리 예술마을 옆에는 파주영어마을이 있어서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헤이리 예술마을은 전체를 돌아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 때 전기차 투어나 자전거 투어를 이용하면 손쉽게 마을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 현충사

 

1706년(숙종 32년) 충청도 유생들이 숙종 임금께 상소하여 조정에서 이를 허락해 사당을 건립하였으며 1707년 숙종임금께서 현충사(顯忠祠)란 액자를 하사하였다.

1868년(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현충사는 철폐되었으며, 1906년 을사늑약에 분노한 유림들이 현충사 유허비를 건립하였다.

 

      

 

 

일제치하에서 이충무공 묘소가 경매로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지경에 처하자 우리 민족 지사들이 ‘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조직하고 동아일보사의 협력으로 민족성금을 모아 1932년 현충사를 중건하였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1967년 본래의 사당(구본전) 위편에 본전을 준공하였고, 이순신 장군 탄신일인 4월 28일을 기념하여 매년 정부주관으로 제전을 울리고 있다.

2011년 전시관과 교육관을 갖춘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이 건립되었다. 전시관에는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에 관한 각종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교육관에서는 이순신 장군 정신과 위업선양을 위한 강의와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2013년도 대한건설협회 경북도회 회원사 대표자 국내연수(1박2일) 모음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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