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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임금 과 왕비

◎ 자 료/4. 잡 동산

by 최안동(圓成) 2013. 10. 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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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임금 과 왕비

 

“난 왕의 아내다”

고대 중국 역사상 가장 살기 좋은 태평성대를 구가했다는 요순시대의 이야기다.

요임금이 민정시찰을 나갔다.

만백성이 길가에 부복하여 왕의 행렬에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고 왕에게 무한한 존경과 복종의 뜻을 보였다.

그런데 기현상이 발생했다.

길가 뽕밭에서 뽕을 따는 처녀가 부복은 고사하고, 한 번도 돌아보지도 않고 열심히 뽕만 따고 있는 게 아닌가?

한 마디로 왕의 권위 따윈 알 바 없다는 일종의 배반행위였다.

“어가를 멈춰라”

왕명에 따라 천지를 흔들던 악대도 음악을 중단하고, 화려한 행렬이 제자리에 섰다.

“어떤 놈이라고 생각하는가?”

친위대장이 촌구석의 뽕 따는 무식한 처녀인 줄 아뢰옵니다.

소신이 가서 확인을 하고 오겠습니다.

왕의 눈에는 처녀의 자태가 너무나 아름다워 거의 환상적이었다.

선녀가 아니고선 어떻게 저리도 곱고 매혹적일 수가 있단 말인가?

아니다. 내 좀 걷고 싶던 차에 잘 됐다.

왕이 직접 뽕따는 처녀에게로 위풍당당하게 걸어갔다.

가까이 왕이 왔는데도 처녀는 돌아보지도 않고 뽕만 따고 있었다.

왕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너는 나의 백성이 아니란 말이냐? 왕이 너를 찾아왔다.”

그때서야 이 처녀는 몸을 돌려 정중히 목례를 했다.

그 순간 왕은 크게 실망을 했다.

아무리 권문세가의 영애라도 왕이 손만 잡으면 왕의 것인데, 이 여인은 통 그러고 싶질 않았다.

처녀의 얼굴에 보기에도 민망한 혹이 달려있었던 것이다.

왕은 슬그머니 객기가 발동했다.

“그래 만백성이 짐을 우러러 경의를 표하고, 땅에 부복하여 순종의 뜻을 보이거늘, 너는 어쩐 연고로 부복은 고사하고, 아예 오불관언(吾不關焉) 한단 말이냐?”

그러자 이 뽕녀의 입에서 참으로 아름답고 당당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하늘 아래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없고, 땅 끝까지 왕의 신하 아닌 자가 없습니다. 어지신 왕에겐 동서남북의 어느 백성이고 심복치 않은 자가 없습니다.

만백성의 어버이에게 부복하는 일만이 경의가 아니고, 부모의 뜻에 따라 소임에 충실함이, 더 충성스러운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부모가 뭣이 그리 대단해?”

은혜가 무한하여 자손은 영구히 받들어야 하고, 효는 만행의 근본이며, 모든 선행 중에서 으뜸인데, 군왕이 마땅히 그 모범을 보이셔야 하거늘, 어찌 이를 탓하려 하시옵니까?

 

왕은 감탄하여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요것 봐라. 날 가르치고 있다.

햐! 고것 참 기이하구나! 하하하...

왕은 첫 번째 질문에서 크게 감탄하여 두 번째 질문을 하기로 했다.

 

“넌 헌데 얼굴에 혹이 달려 챙피하지 않으냐?”

신체발부는 하늘이 부모님을 통해 주신 은사이오며, 하늘의 뜻은 삼라만상을 다스리는 것이 온데, 어버이신 왕께서 어쩐 연고로 소녀의 생김새를 조롱하시옵니까?

인간의 도로써 인간을 다스려야 하고.

외양보다는 내면의 진실을 존중해야 하는 줄 아옵니다.

왕은 더욱 놀라 신하 중에 이런 어질고 현명한 신하가 많았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왕은 그래서 내친 김에 엉뚱한 질문 한 개를 더 해보았다.

 

“너를 내 왕비로 삼고 싶다. 날 따라가겠느냐?”

뽕녀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백성들에게 학문보다는 예를 먼저 가르치셔야 하고, 재리보다는 도리를 먼저 가르치시는 것이 군왕의 도라고 생각하옵니다.

대왕께서 그럴 뜻이 있으시면 나라의 질서를 지키고 예도를 가르치시기 위해, 당연히 먼저 양친의 동의를 구한 다음, 혼서를 보내시고 예법이 정한 바에 따라, 가장 모범이 되는 절차를 준행함이 마땅한 줄 아온데 어이하여 소녀를 노상납치하려 하시옵니까?

 

 

 

왕은 크게 감탄했다.

실로 말씨름에서 왕이 패한 기분이 들 정도라 어안이 벙벙했다.

이 넓은 하늘 아래 누가 감히 왕인 나에게 저렇게 의롭고 유식한 도리를 당당하게 말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의인이 내 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꼬?

여인에게 빠져듦이 마치 때 맞춰 내리는 단비처럼 매 마른 대지를 적심 같도다.

이 노변의 삼문(三問)이야 말로 요임금이 한, 민정시찰의 가장 큰 성과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왕은 예법에 따라 청혼을 하고 혼서를 보냈다.

만백성이 우러러 경축하는 결혼 일에 왕비의 가마가 왕궁에 도달하던 날, 수많은 신하들과 궁녀들이 흥분하며, 왕비가 얼마나 대단한 미인일까 궁금증이 불타올랐다.

그런데 막상 가마 문이 열리자, 왕비를 첨 본 궁녀들의 입가에 조소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조소의 미소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가마에서 내린 왕비는, 무수한 시종들 앞에서 팔을 둥둥 걷어 올리고 주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궁녀들이 더욱 비웃으며 말렸다.

왕비는 “난 왕의 아내다.”

내 손으로 진지를 해드리는 게 도리이다.

저리 비켜라.

그래 왕의 수라상을 준비한 다음에 사치스러운 궁녀들의 복장과 경박한 행동을 지적하여 호령했다.

 

“오늘부턴 백성들보다 사치하는 자는 그냥 두지 않겠다.

 

농어촌의 선량한 부인들보다 잘 먹거나 더 게으른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

백성들의 어버이신 왕을 섬기는 자들이 백성들보다 예와 도리가 모자라면, 어떻게 왕께서 바른 정치를 하실 수 있단 말이냐?”

 

왕비의 엄숙하고 단호한 질책을 받은 궁녀들의 비웃던 입이 모조리 놀란 조개처럼 굳게 다물어졌다.

그날부터 나라의 질서와 도덕이 하루가 다르게 바로 서고 꽃피기 시작했다.

당장 궁중이 달라지고 대신들이 달라졌다.

공직자가 달라지니 백성이 금 새 달라져 나라엔 도둑이 없어지고, 세상인심이 어딜 가나 풍요로워 졌다.

그리하여 이 위대한 여인이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를 창조하는 불가사의의 기적을 낳았다.

왕으로부터 촌부까지 백성은 하나같이 바른 사고와 예의를 지켜 온 천지가 높은 수준의 도덕사회를 이루었다.

먼 훗날 왕비가 돌아가시자 온 나라의 백성들과 왕은 크게 목 놓아 엉엉 울었다고 한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호호백발의 노인들까지, 높은 신하에서부터 저 눈먼 땅의 무지한 노동자까지, 모든 백성이 땅을 치며 울었다는 것이다.

왕비의 은덕을 높이 기리고 사모하는 백성들 중엔, 그 서거소식에 너무 충격을 받아 쓸어 지거나 식음을 폐하고 애도하는 자가 부지기수라 했다는 요순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뽕녀와 같은 여성 정치지도자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2013. 10. 23.  "난 왕 이로다"  - 펌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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