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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冬至)에 대하여

◎ 자 료/1. 정보 마당

by 최안동(圓成) 2009. 12. 24.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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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지(冬至)에 대하여

 

 

 
 ***동지(冬至)에 대하여***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서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음력으로는 11월 중기(中氣)이며, 양력으로는 태양이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冬至線 : 南回歸線)과 황경(黃經) 270도에 도달하는 12월 22일 또는 23일을 가리킨다. 동지는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이는 동지가 드는 시기에 따라 달리 부르는 말이다. 동지는 일년 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여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다. 중국의 《역경(易經)》에는 태양의 시작을 동지로 보고 복괘(復卦)로 11월에 배치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주(周)나라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삼았다. 이러한 중국의 책력과 풍속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옛 사람들은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경사스럽게 여겨 속절로 삼았다. 이것은 동지를 신년으로 생각하는 고대의 유풍에서 비롯된 것으 로서, 전통사회에서는 흔히 동지를 '작은 설'이라 하여 설 다음 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옛 말에 '동지를 지나야 한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살 더 먹는다' 라는 말이 전하기도 한다. 중국의《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 (共工氏)의 재주 없는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疫疾)귀신이 되었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하여 팥죽을 쑤어 물리친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다분히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로 팥죽의 축귀(逐鬼) 기능에 대한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동지팥죽은 절식이면서 동시에 벽사축귀 (邪逐鬼)의 기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팥은 붉은 색깔을 띠고 있어서 축사(逐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역귀(疫鬼)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 데 이용되어 왔다. 이러한 점은 음양사상(陰陽思想)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즉 팥은 붉은 색으로 '양(陽)'을 상징함 으로서 '음(陰)'의 속성을 가지는 역귀나 잡귀를 물리 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경상도 지방에서는 팥죽을 쑤어 삼신·성주께 빌고, 모든 병을 막는다고 하여 솔잎으로 팥죽을 사방에 뿌린다. 또 경기도 지방 에서는 팥죽으로 사당에 차례를 지낸 후, 방을 비롯한 집안 여러 곳에 팥죽 한 그릇씩 떠놓기도 한다. 한편 지방에 따라서는 전염병이 유행할 때,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한다. 한편으로 동지에는 동지팥죽과 더불어 책력을 선물하던 풍속이 전한다. 이에 대해《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 11월 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동지(冬至)는 명일(名日)이라 일양(一陽)이 생(生) 하도다 시식(時食)으로 팥죽을 쑤어 이웃〔隣里〕과 즐기리라 새 책력(冊曆) 반포(頒布)하니 내년(來年) 절후(節侯) 어떠한고 해 짤라 덧이 없고 밤 길기 지리 하다 옛부터 "단오(端午) 선물은 부채요, 동지(冬至) 선물은 책력(冊曆)이라"는 말이 전하여 온다. 전통사회에서는 단오가 가까워 오면 여름철이라 친지와 웃어른께 부채를 여름선물로 선사하고, 또 동지가 되면 책력을 선사하는 풍속이 성하였다. 책력은 농경사회에서 생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요긴하게 사용되었던 생활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동지에는 절식(節食)으로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 (冬至豆粥)' 이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 오랜 풍속이 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1월 조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하여 팥죽을 쑤어 먹는데, 팥죽을 쓸 때 찹쌀로 새알모양으로 빚은 속에 꿀을 타서 시절 음식으로 먹는다. 또한 팥죽은 제상에도 오르며, 팥죽을 문짝에 뿌려 액운을 제거하기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불교에서의 동지의 유래 우리나라에서는 동지를 귀한 날로 여기고 있으나 언제부터 그래왔는 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옛날 중국 총림(叢林)<대중 스님들이 모여 사는 선원> 에서는 동재라 하여 절의 주지스님이나 일반신도가 시주가 되어 동짓날에 대중을 위하여 베푸는 재회를 봉행(奉行)하였다. 총림의 4절은 <결하(結夏); 여름결제> <해하((解夏); 여름해제> <동지> <연조>를 말하며, 그 중 동지를 동년이라 하여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여 왔으며, 동지의 전야를 동야(冬夜)라 하여 성대하게 치뤄왔다. 서양의 크리스마스 이브도 바로 이 동지의 전야를 동야라 하는 풍습에서 전해진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불교에서의 팥죽의 유래 옛날 신라 시대의 이야기이다. 젊은 선비가 살았는데, 사람은 참으로 진실하였으나, 집안이 궁핍하였다. 어느날 과객이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고자 하여 쉬어 가게 해주었더니, 다음날 새벽 길을 떠나기 앞서 그 과객은 선비에게 서로 친구가 되자고 하였다. 이후로 그 과객은 선비에게 종종 찾아와 내년에 벼를 심으라 하면 벼가 풍년이 들고, 고추를 심으라 하여 고추를 심으면 고추농사가 풍년이 되는 등, 수년간 많은 재산을 모으게 하여 그 선비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허나, 이상한 것이 그 과객은 늘 한밤중에 찾아 와서는 날이 새기 전 닭이 울면 사라졌다. 주인인 선비는 재물은 남 부러울 것 없이 많이 모았 으나, 세월이 갈수록 몸이 계속 야위어가더니 마침내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병색이 너무나 심하게 짙어지자, 그 선비는 어느 스님에게 여쭈어 보았는데, 스님께서는 그 과객 에게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라 하였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그 과객은 백마의 피를 가장 싫어한다 하였다. 젊은 선비는 스님의 말씀을 새겨 들은 이후로, 점점 그 과객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선비는 자기 집의 백마를 잡아 온 집안 구석 구석 백마의 피를 뿌렸더니 그동안 친절하던 과객이 도깨비로 변해 도망을 가면서 선비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 선비는 건강이 다시 좋아졌다. 그런데 해마다 동짓날이면 이 과객이 잊지않고 찾아 오는지라 젊은 선비가 스님께 해마다 백마를 잡아서 피를 바를 수 없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방도를 묻게 되었다. 스님께서는 그렇다면 팥물이 백마의 피와 빛깔이 같으니 백마의 피 대신 팥죽을 쑤어 그것을 집에 뿌리라고 하였다. 이것이 동짓날 팥죽을 끊이는 유래라 하기도 한다. -인터넷검색,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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